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장자 강의

"남해의 임금은 숙(儵)이고 북해의 임금은 홀(忽)이고 중앙의 임금은 혼돈(渾沌)이다. 숙과 홀이 때로 혼돈의 땅에서 함께 만났는데, 혼돈이 그들을 매우 잘 대접하자, 숙과 홀이 혼돈의 은혜에 보답하려고 상의하여 이렇게 말했다.

'사람들은 모두 일곱 개의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을 쉬는데, 이 혼돈만은 없으니, 시험 삼아 구멍을 뚫어주자' 하고는 하루에 구멍 한 개씩을 뚫었더니 칠 일 만에 혼돈이 죽었다."

- 제 7 편 | 응제왕(應帝王) , 5장 | 혼돈의 죽음 -

 

숙과 홀은 시간의 신이자 유위, 작위, 인간의 문명을 상징하고, 혼돈은 시간의 흐름에 적용받지 않는 원시의 도, 무위, 자연을 상징한다고 한다. 혼돈은 시비가 없는 상태, 즉 지각이 없다는 것이기 때문에 계산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하고 인간이 볼 때 혼돈은 답답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. 

혼돈의 비극은 우리가 우리와 다른 삶을 사는 존재를 이해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. 이해하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상대를 지배하려는 폭력이 될 수도 있다.

한 해 동안 "장자" 를 읽었다.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, 시간에 쫓기다가, 잊어 버리기도 하고, 게으름을 피우면서, 그렇게 일 년을 부여 잡게 됐다. 장자 《내편》 의 마지막 이야기가 혼돈의 죽음이다. 

한 해를 돌아 보면, 나 자신은 상대에 대한 배려나 이해심이 많이 부족한 채 사회 생활을 했던 것 같다. '나는 신념이 강한 사람' 이라는 어줍잖은 자존감을 내세워서 다른 사람들을 같은 잣대로 판단했던 건 아닌 지.

장자의 사상이 내게는 동의가 안되는 지점이 많긴 하지만, 그럼에도 자연의 모습, 인간의 다양한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끊임 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새겨 들어야 겠다.

내년에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.